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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유씨 양성이씨

이응근 배 강릉유씨·이병영 모자 효열문
(李應根 配 江陵劉氏·李炳榮 母子 孝烈門)

 

▶ 규 모:본당 10평. 면적 100평
▶ 소재지:전남 순천시 해룡면 호두리 710의1
▶ 사적개요(事蹟槪要)

이 효열문은 양성이씨(陽城李氏) 23세 이응근(李應根)의 처 강릉유씨(江陵劉氏)와 그의 아들 24세 해은(海隱) 이병영(李炳榮)의 효열문이다.

1988년 4월 효행비와 함께 효열문이 세워졌고 신용호(申龍浩)가 글을 짓고 김현선(金炫琁)이 글씨를 썼다.

강릉유씨는 1843년에 태어나 192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응근의 부인으로 천품이 어질고 예의범절에 밝았다. 시집온지 3년이 채 못되어 남편이 중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자, 비통한 마음으로 따라 죽기로 결심하고 식음을 전폐. 실신 상태가 되었는데 시부인 윤신공(允臣公)이 눈물로 "종사는 누가 받들며 어린 손자와 늙은 나는 어찌하라고 죽기를 원하느냐?"란 말에 마음을 돌려 먹었다.

남편 사후 3년은 어육을 전폐하고 시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에 정성을 다하고 시부모상을 당해서도 상장의 범절을 어김없이 성실히 행하니 그 효행을 향리의 모든 사람들이 높이 칭찬했다. 이병영은 1868년에 태어나 194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해은(海隱). 본관은 양성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상례범절을 어른 못지않게 해냈으며 편모에 효를 극진히 하고 모훈을 잘 받들어 덕행이 높았고 모친 유씨가 병으로 눕게 되자 두문불출 모친 곁에서 정성껏 간호했고 부인 오씨도 함께 간호하니 효자·효부라 감탄했다. 모친 유씨가 돌아가심에 망극 애통해 하며 정성껏 상례 범절을 다하고 추울때나 더울때나 조석으로 성묘하였으니 효를 다한 효자이다.


강릉유씨(江陵劉氏) 24세
이병영(李炳榮) 모자 효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