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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충효절의 > 효부열녀정려

-▶ 15세 승람(承攬)부인 남양홍씨(南陽洪氏):생몰년 미상.

  시부 직제학공 무강(無疆)이 이기(李)의 당으로 몰려 숨어버리고 가족이 풍비박산되매, 단신으로 어린 아들 추생(抽生)을 업고 밤중에 김포 통진해안에서 남양 두굴리 해안까지 도피, 남양 친가에서 임시 기류하다가 지금의 북양동에 정주하여 자손이 번연해 왔다.
(경기도 화성시 북양1동) (1-83)

 

-▶ 15세 덕윤(德潤)부인 이씨(李氏):생몰년 미상

  성춘(成春)의 따님으로 병자호란때 호군이 갑자기 밀어닥쳐 흉봉을 피할 길 없어 봉욕의 급경에 처하자 강에 몸을 던져 절사하였다. 외아들 대업(大業)은 붙잡혔으나 마침내 생환하니 나이 겨우 12세였다. 세인이 모부인의 정절 때문에 살았다고 하다.
(함남 정평군 귀림면) (1-252)

 

-▶ 17세 창선(昌善)부인 김해김씨(金海金氏):판윤 진해(振海)의 따님.

  남편 병환에 오른쪽 사타구니살을 베어낸 후 3삭이되어 남편 병이 재발, 왼쪽 사타구니살 마저도 베었으나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이에 남편의 유언에 따라 시부모에 극진한 효도를 하고 어린 세아들을 길러낸 효열로 정려가 내리다.
(전남 영암군 삼계면) (2-156)

 

-▶ 17세 혐()부인 연일정씨(延日鄭氏):생몰년 미상.

  포은의 9대손. 동지중추부사 위(偉)의 따님. 남편을 일찍 여이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1728년 무신지변(청주·진천·죽산·안성 등지에서의 이인좌의 병란)을 당하여 적당 서봉(瑞鳳) 등이 두 아들 성경(成慶)·연경(延慶)을 위협함에 부인이 굽히지 않고 적을 꾸짖기를 ‘내가 비록 여자이지만 포은의 후예로 결코 두 아들을 역모에 가담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우리 모자를 죽여라.’고 소리높여 힐책하니 적이 집을 부수기를 몇 번, 압사할 지경이었으나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무사하였다.
(경기도 평택시 죽백동) (2-268)

 

-▶ 19세 유장(有章)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1793

  정철(廷哲)의 따님. 남편이 죽자 20여년을 수절하다 슬픔을 참지 못하고 1793년 목매여 순절하였다. 향리에서 그 정절을 추천하여 1797년 정려내리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방추리) (1-331)

 

-▶ 20세 양택(陽宅)부인 김해허씨(金海許氏):1746~1781

  근(瑾)의 따님. 남편이 향시를 보러 갔다오다가 흉악한 살인마를 만나 31세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죄인을 귀양보내니 부인이 관아에 가서 혈서로 항의 호소하였으나 며칠을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으매 칼로 목을 찔렀으나 죽지못하다가 마침내 식음을 전폐하고 죽었다. 1782년 이 정렬로 정려가 내려졌다. 현재 열녀각이 있고 ‘김해허씨 열녀정문기’가 있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237의 2) (1-306)

 

-▶ 20세 창후(彰后)부인 광주김씨(光州金氏):생몰년 미상

  효열로 정려내리다.                                                                  (황해도 해주시 서대공리) (1-397)

 

-▶ 21세 사담(師聃)부인 창녕조씨(昌寧曺氏):생몰년 미상

  명형(命亨)의 따님. 남편 병환에 사타구니 살을 베는 열행을 하였으며, 남편도 손가락을 베고 려묘한 효자로 조카 준구가 가장에 적었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2-135)

 

-▶ 21세 우득(愚得)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생몰년 미상.

  증 통정 수빈(壽彬)의 따님. 열행이 탁이하여 고종때 호남삼강록에 실리고 1922년 정려각을 세우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동산리) (2-193)

 

-▶ 21세 우룡(愚龍)부인 절강편씨(浙江片氏):1818~1852

  인태(仁太)의 따님. 남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위하여 허벅지 살을 베고 단지하여 3일을 연명하였으나 이내 죽었다. 3년상을 마친 후 몰래 송실(松室)에 들어가 절사하니 그때 나이 35세였다. 1870년 정려가 내리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 장성리) (2-241)

 

-▶ 22세 정래(禎來)부인 의성김씨(義城金氏):생몰년 미상

  정해(廷海)의 따님. 1797년 정렬로 정려를 내리다.
(황해도 금천군 청교면 광천리) (3-374)

 

-▶ 22세 연수(洙)부인 강릉김씨(江陵金氏):생몰년 미상

  병칠(秉七)의 따님. 천성이 지효하여 시부모 봉양과 받듬이 지극하였다. 때에 시집온지 2년만인 1891년 남편이 일로 상경, 몇 달간 오지 못하더니 병에 걸려 부군의 병세가 위중하여 즉시 손가락을 찢어 주혈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하느님께 자기 몸을 대신하고 쾌병하기를 축원하면서 또한 침실에 들어가 허벅지살을 깊이 2치 길이 5치를 떼어내 끓여 바쳐 회생시켰다. 부군이 완쾌후 모든 일을 볼 수 있었고, 시아버지 병환과 친정아버지 병환에도 정성껏 시탕했다. 이에 향유들이 요로에 효열부로 천거하다. 또 효열비를 1993년 세우다.
(전북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 799) (3-583)

 

-▶ 22세 석홍(錫弘)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1766~1793

  제두(齊斗)의 따님. 남편이 36세로 생을 마침에 49일만에 남편따라 죽는 열행을 하다.
(충북 진천군 백곡면) (4-108)

 

-▶ 22세 예()부인 울산오씨(蔚山吳氏):1840 ~1864

  윤주(崙柱)의 따님.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과묵하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으며 시집와서는 더욱이 부도를 지키니 사림에서 시어머니인 기계유씨(杞溪兪氏)와 더불어 양세를 효부로 장계올려 포상받다.
(전북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4-190)

 

-▶ 22세 성구(聖九)부인 제주양씨(濟州梁氏):1843~1919

  찬집(贊集)의 따님. 열행으로 삼강록에 들다.
(전남 신안군 팔금면 읍리) (4-633)

 

-▶ 22세 행식(幸植)부인 밀양손씨(密陽孫氏):1813~1907

  여평(汝平)의 따님. 남편이 원인모를 이상한 병에 걸려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니, 남편따라 죽고자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곧이곧대로 선조 향사와 어린 아들 양육에 힘쓰다. 이에 향리에서 정절부라고 칭찬하다.
(전남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 (5-76)

 

-▶ 22세 승백(承伯)부인 한씨(韓氏):1818~?

창후(昌)의 따님. 열행이 탁이하여 예조에서 완문(完文)이 내려오고 삼강록에 실리다.
(함남 정평군 춘류면 광흥리) (5-341)

 

-▶ 22세 병욱(秉郁)부인 청송김씨(靑松金氏):1825~?

  춘옥(春玉)의 따님. 시어머니 질환에 수년간 항상 약을 시탕하고 똥이 달고 쓴 것을 맛보았으며, 시아버지 장례에 백일장을 헤아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모시니 유림에서 장계를 올리다.
(함남 정평군 고산면 소선동) (5-379)

 

-▶ 22세 용규(龍奎)부인 경주김씨(慶州金氏):1790~?

  봉헌(鳳憲)의 따님. 효행이 있어 1846년 삼강록에 실리다.
(함남 정평군 춘류면 화동) (5-434)

 

-▶ 22세 양호(良浩)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1831~1874

  취강(就康)의 따님. 23세때 남편을 일찍 여이고 열행으로 1846년 삼강록에 실리다.
(함남 정평군 광덕면 인흥리) (5-580)

 

-▶ 22세 선표(璿杓)부인 단양장씨(丹陽張氏):1838~1905

석정(錫禎)의 따님. 34세때 남편이 조세하매 시모 봉양과 어린 외아들 양육의 효열행을 하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5-701)

▶▶ 22세 필보(弼輔)부인 안성이씨(安城李氏):1829~?
인철(仁徹)의 따님. 17세의 남편이 조세하여 무자녀로 시부모 공양하는 효열로 향유에서 누차 가상지제(嘉尙之題)로 책을 써 올리다.
(경기도 평택시 죽백동) (5-756)

 

-▶ 23세 응근(應根)부인 강릉유씨(江陵劉氏):1843~1928

  명렬(命烈)의 따님. 시집온지 3년이 못되어 남편이 죽어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기로 결심하였으나 시부의 타이름에 감동, 남편사후 3년은 어육을 폐하고, 시부모상에도 상장범례를 성실히 행하여 효행이 크게 소문나서 향리의 모든 사람들이 높이 칭찬하다. 호남삼강록·대한충의효열록에 실리고 외아들 병영(炳榮)도 효자로 함께 효열문이 세워지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호두리) (3-10)

 

-▶ 23세 기로(起魯)부인 전주최씨(全州崔氏):1789~1810

  수보(守寶)의 따님. 성품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예법을 익혀 시부모를 봉양 효도를 다하고 봉제사를 예대로 해오다. 일찍이 홀어머니가 누대를 받들어온 사우에서 밤늦게 실화하여 탈출하지 못하매 이를 구하려 불에 뛰어들어 가묘에서 나왔으나 전신이 화상을 입어 수일만에 운명했다. 향인들이 모두 효열부라고 칭송하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4-98)

 

-▶ 23세 병화(炳華)부인 황주변씨(黃州邊氏):1807~1880

  식용(寔容)의 따님. 시부모에게 효도 하고 봉양을 하며 남편에게는 어김없이 사덕을 지켜 꾸밈이 없으니 향리에서 탄송하다.
(전남 나주시 왕곡면 본양리) (4-508)

 

-▶ 23세 병준(炳準) 부인 이천서씨(利川徐氏):1850~1935

  흥달(興達)의 따님. 일찍 과부가 되어 어린 3남2녀를 키우다. 시아버지 봉양에 정성을 다했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편도 2달만에 죽어 려묘하니 백연(白燕)의 이변이라고 향당이 천거하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마산리) (4-536)

 

-▶ 23세 병문(炳文) 부인 김해김씨(金海金氏):1859~?

  치련(致連)의 따님. 천성이 순일하여 어김이 없었다. 나이 20에 남편에게 질병이 생겨 얼마 안되어 운명하기에 이르매, 축단(築壇)하여 빌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으니 3일만에 깨어나다. 그후 남편이 34세에 죽으매, 남편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어린 아들 3형제가 있음을 생각하고 참고 견디어 상례범절을 다하고 자녀들을 훌륭히 교육시키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 수도리) (4-544)

 

-▶ 23세 병룡(炳龍) 부인 광산김씨(光山金氏):1897~1949

  득화(得化)의 따님. 시어머니 병환에 정성을 다하여 시탕했으며, 남편이 병을 얻어 운명하게 되매,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수일을 연명케 하다. 1982년 열부행적비 세우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동산리) (4-714)

 

-▶ 23세 병칠(炳七)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1925~

  용주(龍珠)의 따님. 1976년 효부 윤운림(尹雲林) 여사 행적비를 세우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동산리) (4-716)

 

-▶ 23세 병국(炳國) 부인 신안주씨(新安朱氏):1872~1908

  두형(斗炯)의 따님. 효열이 특이하여 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며느리 평택임씨도 효부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4-801)

 

-▶ 23세 벽증(壁增)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1860~?

  선국(先國)의따님. 시집온지 얼마 안되어 18세때 남편이 죽으니, 그후 나무하고 논밭가는 농사일을 모두 손수하여 집안살림을 유지하며 수절하여 유림에서 장계를 올리다.
(함남 정평군 장원면 정당동) (5-346)

 

-▶ 23세 도섭(道燮) 부인 전주김씨(全州金氏):1860~1922

  이희(履禧)의 따님. 21세에 과수가 되어 수절하여 삼종지예인 아들을 따르는 일이 조선명륜록에 실렸다.
(함남 정평군 주이면 동봉리) (5-373)

 

-▶ 23세 호근(浩根)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 :?~1906

재정(在鼎)의 따님. 절행으로 1906년 삼강록에 실리다.
(함남 정평군 춘류면 신성리) (5-445)

 

-▶ 23세 원주(遠) 부인 경주김씨(慶州金氏):1870~1932

  만춘(萬春)의 따님. 시집온지 2년만에 남편이 죽어 늙은 시아버지 봉양에 효도를 다하고 외아들을 잘 길러 가난을 이겨내면서 성가시키니 유림에서 장계를 올리다.
(함남 정평군 장원면 하대리)
(5-485)

 

-▶ 23세 지형(摯衡) 부인 김해김씨(金海金氏):1815~1884

  이규(履奎)의 따님. 시집오자마자 21세때 시부모상을 겪어 상례를 다하다. 1906년 삼강록에 실리다.
(함남 정평군 문산면 신흥사동) (5-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