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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유적/유물 > 정려
정려문 김해허씨 죽산안씨 강릉김씨 윤운림여사
강릉유씨 양성이씨

이양택 배 김해허씨 열녀 정려문
(李陽宅 配 金海許氏 烈女 旌閭門)

 

▶ 규  모:50평(대지)
▶ 소재지: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237-2
▶ 사적개요(事蹟槪要)

이 열녀정려문은 양성이씨(陽城李氏) 20세 이양택(李陽宅)의 처 김해허씨(金海許氏)의 정려문이다. 1782년(정조 6)에 열녀정려문이 내려지고 동년 9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혜조(李惠祚)가 김해허씨 열녀정문기(烈女旌門記)를 썼다.
김해허씨는 1746년에 태어나 1781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양택의 처로 이양택이 능주에 향시를 보러 갔다 오는 길에 광청촌(廣淸村) 조씨집안 서자인 살인마를 만나 목숨을 잃음에 그 부인이 6년간 원수갚을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죄수를 감형. 귀양을 보냄에 부인이 순영에 가서 혈서로 호소하니 순사(巡使)가 다시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순영 뜰에 나아가 칼로 자결하였으나 즉시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10여일만에 “순사가 나를 속였다”하고 임종했다. 이에 시아주버니인 이양규(李陽奎)는 임금이 거동시 노비로 하여금 꽹과리를 치게하고 하문을 기다렸더니 정조(正祖)가 마침내 열녀정문을 내리고 전라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재수사케 하여 한 맺힌 원수를 사형에 처하게 하였다.


20세 이양택(李陽宅) 부인
김해허씨(金海許氏) 열녀 정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