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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병자호란 기사환국

◆ 이수백(李守白):1577 ~ 1634

  무신. 시조 상주국공의 14세손. 참판 의(顗)의 아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606년(선조39)에 경원판관을 거쳐 1617년(광해군9) 포도종사관(捕盜從事官)이 되었다. 이후 갑산부사로 부임하여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에 진입했을 때 처음에는 동조하였으나 그후 이괄의 목을 베어 난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훈되었고, 양남군(陽南君)에 봉하여졌다. 선정비가 함경남도 삼수군 삼서면 보성리에 있다. (1-140)

◆ 이영정(李榮廷):1582 ~?

  자 군효(君孝). 호 양심재(養心齋). 시조 상주국공의 15세손. 남천부장 성혼(成渾)의 아들. 행의로 누차 향천에 들고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1624년 이괄의 난때 의병모집을 맨 먼저 창의, 진경문(陳景文)·정여룡(鄭如龍)과 더불어 영광군 원두표(元斗杓) 원님에게 의병을 일으킨다는 격문을 띄웠다. 이후 1627년 정묘호란 때도 동지 10여인과 격문을 띄운 바 있다. 절의록에 실리다.(1-190)

◆ 이영후(李榮後):1589 ~ ?

  시조 상주국공의 15세손. 군자감참봉 방보(邦輔)의 아들. 황토기이(黃土岐伊) 권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우다. 진무원종공신 녹권이 있고 승지로 추증되다.(1-221)